111.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사실 요즘 20~30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유명한 한국 바둑기사는 단연 이세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파고 VS 이세돌 이벤트 매치로 바둑에 문외한인 사람들 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실제로 그 존나 살벌한 스카이넷 한테서 한 경기를 이겨서 더욱 화제가 된데다 한국기원의 부조리한 제도 및 관습을 고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도 간간히 알려지고 있으니.


하지만, 바둑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세돌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라고 누구나 그렇게 말할것이다.




111.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1989년에 열렸던 KBS 바둑왕전 결승, 이때 이창호의 나이는 겨우 13세)


이창호는 86년에 작고하신 할아버지께 바둑을 처음 배운 이후로 계속 바둑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10살이 되던 해에는 그 유명한 조훈현 국수의 내제자(같은 집에 살면서 가르치고 가르침받는 사제관계) 로 들어갔고, 그 다음해인 1년 뒤에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겨우 초등학교도 졸업못한 나이에 프로 바둑기사가 된다는건 진짜 엄청난 일이었지만, 얄궂게도 당시 스승이었던 조훈현 국수는 이창호가 방금 둔 바둑의 복기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 보고 '과연 천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아마 그건 조훈현 본인부터가 현대바둑사 최고의 천재이기 때문에 이창호의 재능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창호의 11살 입단은 최연소 입단기록 2위인데, 1위가 바로 9살에 입단한 스승 조훈현이니.


그렇게 어린나이에 입단한 이창호는 13세에 바둑왕전 우승을 시작으로 무섭게 성장해나갔다.

당시 이창호의 바둑을 예의주시하던 프로기사들이 놀란점이 있는데, 보통 어린 천재들이라면 화려하고 눈에 띄는 기풍을 좋아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창호가 보여주는 기풍은 승부의 본질을 꿰는 내실형 바둑이었기 때문이다.


"창호는 눈에 보이지 앉는 천재다. 창호는 자기 바둑 수순도 잊어 먹는다. 세상에 그런 천재가 어디있나. 게다가 창호는 당연히 치고 나가야 하는 수순인데 갑자기 하수처럼 물러난다. 난 어이가 없어서 야단을 친다. 그러면 떠듬떠듬 말한다. '그렇게 하면 싸움이 붙고, 그러다가 아차하면 역전당할수 있다. 하지만 물러서면 2, 3집밖에 못 이기겠지만, 결코 지는일은 없다'고"

(2014년 동아일보 조훈현 인터뷰 중)


큰 점수차로 이기면 골득실 기록이 남는 축구와는 달리, 바둑은 결국 몇집 차로 이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기는 것 자체만이 중요한 법.

그러니 상대방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는 안정적이고 두터운 기풍은 이창호가 어린 나이에 얼마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잠시 다른 얘기로 새자면, 이창호의 이러한 기풍은 공교롭게도 이세돌과 붙었던 당시의 알파고가 보여준 기풍이기도 하다.

알파고는 '승률이 높은' 수를 찾아서 두지, 결코 '크게 이기는 수'를 찾아서 두지 않기 때문.

오죽하면 당시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던 프로기사들이 이창호가 떠오른다고 했을까.)


다시 이야기로 되돌아오자면, 조훈현 국수가 처음부터 이창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곧 이창호는 무섭게 성장해 스승이 가진 타이틀을 전부 빼앗아버릴 정도로 성장했다. 

내제자로 있던 기간동안 많은것을 조훈현 국수에게 배웠고, 실제로 이창호는 조훈현 정미화 내외를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이창호가 그 두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2010년에 결혼식을 올렸을때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이창호는 결혼식에 가족들과 친지들만 초청하고 바둑 관계자는 단 한명도 부르지 않았는데, 조훈현 정미화 내외만은 가족이라 생각해서 초쳥했다고 한다.


111.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어렸을 때의 이창호는 바둑에 있어선 최고였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는 둔했다고 한다.

조훈현 국수의 부인 정미화씨가 말하길, 열살때 내제자로 들어온 이창호는 혼자 머리를 감지도 못해서 씻겨줘야 했고, 

신발끈도 묶질 못해서 누가 묶어주질 않으면 풀린 신발끈을 그대로 내버려뒀다고...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이창호는 당시 국회의원들의 지지로 특별법이 마련되어 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마치는 대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는 조건으로 특례를 받았는데, 그의 둔한 면은 훈련소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집합을 하는데 항상 누군가가 빠져있고, 조교가 입을 댓빨 내밀고 내무반에 가보면 항상 남아있는게 이창호.

그때까지 남아있던 이유는 전투화 끈을 못 매겠어서 라고...


원래대로라면 바로 연병장 조뺑이를 돌려도 시원치 않았지만, 천하의 이창호는 국회의원들이 뒤를 봐주는 무시무시한 남자.

결국 조교는 전투화를 개조해서 '이창호 전용 똑딱이 단추 전투화'를 만들어 줬다고 한다...




111.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222.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던 이창호와, 어른이 되어서도 오락실을 찾는 이창호)


그리고 바둑밖에 모를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이창호는 격투게임을 즐겨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어릴때의 이창호는 스트레스를 받을때 오락실에 가서 또래 기사들과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했다고 한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격투게임을 즐겨했고, 가끔씩 이렇게 철권을 즐기러 오락실에 나타난다고...

이때문에 잠깐 디시 고전게임 갤러리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 오락실에 여드름 멸치쉑 있는데? ㅋㅋㅋ"

"깝치지 마라. 이분은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이다 븅쉰 ㅉㅉ."


연세 40줄을 넘으신 요즘엔 철권 하시는지 모르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건대쪽 오락실에서 가끔 출몰했다는 정보가 있긴 한데...



111.jpg 한국 바둑계의 돌부처. 신산(神算) 이창호의 몇가지 에피소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2015년 Tvn에서 방영했던 응답하라 1988의 등장인물인 최택의 모티브가 바로 이창호라는 것. 

(이창호와 이세돌을 섞었다는 말도 있다)

여러 부분에서 실제 이창호가 겪었던 일들과 면모들을 차용했는데, 과묵하고 순진한 성격, 보석상을 하는 부친,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 중국에 가서 대국할때 현지 요리를 먹고 배탈이 나서 동행한 사람이 주변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구해오는 것 등등...

이창호는 최택을 보고 실제 자신은 어릴때 바둑만 하느라 동네 친구들이 없었는데, 최택은 동네 친구들이 있는 점이 부러웠다며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이 외에 이창호의 바둑기사로서의 커리어를 논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랬다가는 너무 긴 이야기가 될거 같아 이만 글을 줄여보려 한다.


차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2005년에 있었던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항전 단독 하드캐리 우승사건 같은 큰 일들을 적어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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